본문 바로가기

LOVE

결혼식 이야기 (1)나 정말 두 번은 못하겠다.

결혼이라는 것을 했다.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라 약간 사고 비슷한 것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꼬박 8개월 간 준비한 대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했다.

이 모든 감정들과 생각들이 날라가기 전에 정리해본다.


결혼식 당일

결혼식 당일이 정신없다는 거야 워낙 누누이 들어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혼식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정신이 없었다.

 

메이크업 샵까지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이 피부, 이 헤어가 최선인가를 따져보느라 스트레스를 받을 정신마저 있다. 

식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시간은 미친듯이 흐르기 시작한다.

 

나는 첫 타임 예식이라 식이 시작하기 전 커플 사진과 직계 가족 사진을 미리 찍을 수 있었다.

도착해서 짐을 추스리기 무섭게 카메라 4대가 붙어서 ‘이렇게 해보세요, 저렇게 해보세요’ 요구를 해오기 시작한다. (스냅 2대 + 영상 2대)

얼굴이 안풀려 경련을 일으키며 미소 짓다보면, 손님들이 오기 시작한다.

또 사진을 미친듯이 찍는다.

모르는 사람 (아마도 부모님 친구분들)도 와서 핸드폰으로 나를 찍는다.

그러다보면 갑자기 헬퍼 이모님이 드레스를 더 꽉 조여주신다. 입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식전에 찍어야 이렇게 여유로운(?)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한다.

 

난 핀조명을 때려박는 어두운 홀에서 결혼을 했다.(만약 또 한번의 기회가 생긴다면 밝은 홀에서 하고 싶다. 물론 기회가 생기면 안됨.)

식이 시작되면 그때부터는 정말 순식간이다.

빨리감기 한 것처럼 화촉점화와 신랑 입장이 진행되고, 신부입장이 다와가면 불을 끈 대기실에 나만 두고 모두 나가버린다.

대기실 뒤쪽에서 핀조명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 스냅작가님 한분이 계셨다. 이분까지 없었으면 제법 무서웠을 듯)

문이 열리면 무거운 드레스와 부케를 한손에 몽땅 쥐어들고, 버진로드를 나선다.

한손에 드는 이 동작이 꽤나 버겁다. 사이드 레터럴 레이즈 할때의 그 근육이 뻐근해져 온다.

 

아빠 손을 잡고 뒤뚱뒤뚱 걷다보면 어두운 홀 곳곳에서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한손엔 드레스와 부케, 다른 한손으로는 아빠 손을 쥐고 있어서 인사를 할 수가 없다.(영상을 보니, 아빠와 함께 잡은 손을 짤짤 흔들고 있더라)

눈이 너무 부신 탓에 정신이 없다.

그러다 보면 아빠와 남편이 어색하게 포옹을 한 뒤, 나는 어느새 남편의 손을 쥐고 있다.

이 때부터는 믿을 수 있는게 남편 밖에 없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게 남편 얼굴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 나는 남편이 축가를 해줬다.

가사를 안 까먹고 부를 수 있는지가 너무 걱정이 돼서, 오롯이 축가를 즐기지 못하고 나까지 가사를 복기하느라 진땀이 뻘뻘 났다.

웬만하면 축가는 외주를 주길. 축가까지 신경쓰기엔 이미 신랑신부는 너무 정신이 없다.

하지만 그 하얀 핀조명 아래서 남편과 마주보고 서서, 서로를 믿으며 (서로 가사를 틀리며) 축가를 부르고 또 듣는 경험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강한 조명 탓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겨드랑이에 살짝 땀이 찰 무렵, 신랑신부 행진과 함께 식은 막바지를 향해 간다.

버진로드 끝, 친구들이 뿌려주는 플라워샤워 + 키스타임에 사진이 (또 한번) 마구 찍힌다.

평생 찍을 사진을 이날 몽땅 다 찍힌 느낌이다.

 

이제는 친지와 친구 단체 사진만 찍히면 정말 끝이다. 너무나 길게만 느껴지는 자리 배치와 옷매무새 단도리를 거쳐, 수많은 사람들과의 촬영으로 식이 끝난다.

 

하객들이 식사하는 동안, 신랑 신부는 후다닥 피로연용 옷으로 갈아입는다.

나는 일상에서도 입을만한 옷이었으면 좋겠어서, 검은색 드레시한 원피스를 사입었다.

검은색 옷을 입으면 하객과 구분이 안가기 때문에 하얀 옷을 입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경험자의 입장에서 그런 걱정은 접어둬도 될 것 같다.

신부는 이미 빡센 화장과 헤어를 장착했기 때문에,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어도 그냥 신부다. 입고 싶은 옷을 입자. 

마음에 들었던 예복. 여기에 벨트까지 더해서 입었다.

남편과 손을 잡고 서로의 회사 동료, 친구, 나도 모르는 나의 먼 친척, 부모님의 친구분들에게까지 인사를 한다. (모르는 분이시길래 남편 친척이신가보다-하고 방긋방긋 웃고 있었는데, 내 쪽 친척분이셨다.)

주로 먼길오셔서 감사하다는말, 식사는 할만한지 여쭤보는 말 등을 정신없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접수를 받아준 친척들로부터 축의금을 건네어 받은 뒤, VIP 룸에 가서 가족들과 식사를 한다.

그 축의금으로 식장과 정산까지 마치면 정말 정말 끝.

그쯤 되면 뒷 타임 결혼식이 또 한창이다. ‘저 신부도 예쁘네~ 하지만 내가 더 예뻤어 흥!‘ 생각하며 주차장으로 간다.

 

돌이켜보니 이렇게하면 좋았겠더라.

 

1) 식장에서 짐 둘 곳과, 신부 짐을 맡아줄 사람 정해두기.

  - 식장에 도착하면 짐 둘 곳을 미리 정해두자.

  - 특히 신부 짐의 경우, 신부가 필요한 짐만 딱 신부대기실에 두고 이 짐을 맡아줄 사람까지 미리 정한 뒤에, 식 후에 그 사람이 짐을 전달해줄 곳 까지 정해두자.  신부는 버진로드로 입장하는 순간, 다시는 대기실로 가지 못한다. 그리고 보통 피로연 때 착용할 악세사리, 화장품, 정산에 등등이 신부 가방에 있을 때문에 식이 끝난 뒤 가방이 어딨는지 찾기 힘들면 조금 난감하다. 

 

2) 수거한 축의금을 전달받는 시점 정해두기.

  - 굉장히 중요한 물품임에도 불구하고, 인사하다보면 정신이 없어서 놓치게 된다. (예시 : 내가 피로연 인사 돌고, 너한테 갈테니까 그때 전달해줘)

  - 축의금 전달받을 때, 감사의 인사를 하며 사례도 바로 전달하기. (난 이걸 놓쳐서 얼레벌레 모바일로 나중에 전달했다)

 

3) 피로연 때 인사를 돌 때, 엄마아빠와 상의해서 친척분들께는 같이 소개받으며 인사드리기.

  - 엄마아빠에게는 가깝지만 나에게는 너무 먼 친척이었던 터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인사드린게 조금 아쉽다. 

 

4) 드레스가 무거워도 조금 더 사뿐사뿐 걷기.

  - 영상을 보니, 한걸음씩 신중하게 내딛는답시고 너무 뒤뚱뒤뚱 걷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걷자.

 

 

아쉬움도 남지만 후련함이 훨씬 큰 결혼식이었다.

사람은 딱 경험한만큼의 세계만 살아간다고, 나 역시 직접 결혼식을 치뤄본 뒤 '식'과 '축하'에 대한 생각이 많이 변하였다.

다음 글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정리해보려 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