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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연인 사이에서 기념일이란? (feat. 서른살 생일)

서른 살의 4분의 1도 호로록 지나가버렸고, 곧 내 생일이다.

 

나에겐 어렸을 때부터 계속 되어온, 꽤나 유서 깊은 '생일의 저주'가 있다. 평소에는 단세포마냥 행복한 편이지만 유독 생일날에 울적해진다. 인간이라면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생일이다. 하지만 조금은 특별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특별하게 보내야하지 않을까?-하는 기대와 강박이 뒤엉켜, 난 매년 빠짐없이 실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곤 했다.

 

남자친구와 함께 했던 생일들은 내 환상만큼은 로맨틱하지 않았다. 생일이 평일이면 퇴근시간 때문에 당일에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근사한 식당에는 데려갔지만 케익과 꽃다발은 없어서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나' 묘하게 서운했던 적도 있었다. 아, 대충 집 근처 고기집에서 밥을 사주던 애인도 있었다.

 

비극적이게도 100일, 200일 같은 잡스러운(?) 기념일을 단 한번도 챙겨본적이 없다. 많은 것을 귀찮아하는 내 성향에 썩 잘 맞는 연애 방식은 아닌 것 같지만, 분명 어릴 때만 꽁냥꽁냥 할 수 있는 것들 중 하나인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의 애인에게 해보자고 제안할 수는 없다. 왜냐면.. 내가 잘 챙길 자신이 정말 없거든.

 

아무튼 그런 류의 기념일을 제외하고 나면 굵직하게 생일, 1년, 크리스마스 정도가 남는다. 데이트도 결국 비슷하게 반복되기 때문에, 이런 날만큼은 좀 각잡고 챙겨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예쁘게 차려입고 비싼 레스토랑에 가서 분위기 내며 식사도 하고 싶고, 꽃다발과 편지와 케익까지 준비해서, 이렇게까지! 굳이! 차고 넘치게! 잉여롭고 호화스럽게! 하루를 보내고 싶다. 기념일이 뭐 별거냐고 하지만, 이것마저 챙기지 않으면 1년 중 특별하고 중요한 날은 정말 단 하루도 없을테다.

 

문제는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생일 혹은 상대의 생일이 닥쳐버리는 것이다. 

 

1) 내 생일이 먼저 닥쳤을 때

염치에 집착하는 편이다. 만난지 한달만에 "오빠, 난 생일에는 비싼 레스토랑에다가 케익, 꽃다발, 손편지까지 받고 싶어. 아참! 그렇지만 또 선물이 없으면 조금 서운한거 알지?^^" 라고 말할 깜냥은 되지 않는다.(아니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너무 부담스럽네;) 상대가 고뇌에 빠지지 않도록 적당한 가격대의 선물을 골라놓고 나머지는 그에게 맡긴다. 물론 세모눈을 뜨고 그를 평가할 준비를 다 마친 채로.

 

2) 그의 생일이 먼저 닥쳤을 때

염치에 집착하는 편이다! 야무지게 기념일을 챙기는거? 내가 먼저 해주면 된다. 보통 그러면 상대도 함께 맞춰주니까. 문제는 20대 후반부터 내가 굉장히 짧은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아니다 싶으면 시간낭비 하지 않고 바로 헤어져버린다.) 문제는 결국 '사귄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3개월따리로 연애하고 끝날지도 모르는 분에게 몇십만원씩 쓰는거, 솔직히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래,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우린 지금 눈치싸움을 하는 중일테다.

(사실 상대의 반응을 보아하니, 많은 남자들이 그러하듯 그 누구의 생일에도 큰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고로 나홀로 섀도우 복싱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후후)

 

역지사지를 하고 났더니, 생일에 대한 기대가 팍 줄었다. 조금은 덜 우울한 생일을 맞이할 수 있겠는걸! 하하하! (눈물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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