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틴더남들을 주욱 정리하고 있다. 저번 주 일요일에 GUY#3을 마무리했어야 하는데, 현재의 틴더남 때문에 조금 씁쓸해져 잠시 현재에 집중해보려 한다. 만나보지도 않은 사람에게 또 정을 줘버린 내가 놀랍다. 이 정도면 정말 다정도 병이다.
틴더 프로필에 간단한 영어라도 써뒀다하면 영어로 첫인사가 종종 오곤 한다. 이 친구와도 영어로 대화를 조금 주고 받다가 금세 바닥이 드러나버려 한국말을 섞어가며 얘기했다. 점점 더 끝이보이는 영어가 답답할 무렵, '너 한국어를 읽을 수는 있지?'라고 물었더니 '엥 나 한국인인데' 이렇게 답이 온다. 우리 뭐했냐며 낄낄거리며 카톡으로 넘어갔다.
강아지 얘기로 주접을 떨다가 이야기가 재미없어질 쯤 전화통화를 했다. 첫 통화는 틴더다웠다. 폰섹 비스끄리무리하게 흘러갔는데, 이런 케이스는 오히려 간편하다. 관계에 아무런 기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첫 통화 이후가 달랐다. 온종일 카톡을 하는 것도 모자라 집안일을 하며 시시콜콜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둘다 집 인테리어를 바꾸는 중이라 가구를 골라주기도 했다. 가족 이야기, 투자 이야기, 회사 이야기,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 자, 이제 이런 류의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난 병이 도진다. 다정병.
절대 내가 도끼병이나 김칫국 드링커가 아니라고 믿고싶은게, 새해 포함 꼬박 2주를 저런 식으로 보냈다. 나중에는 거의 하루에 한번씩 영상통화도 했단 말이다... 이렇게 연락을 하다가 간만에 들어간 틴더에서 매치리스트에 그 친구가 사라진 걸 발견해버리면 병은 한층 더 깊어진다. '얘도 이 관계를 특별하게 생각하나? 그래서 지웠나? 혹시 이번엔 진짜로 짝꿍이 될 수 있는건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마음을 다 잡아야한다. 마치 우리가 무슨 관계라도 된 마냥 굴지 않도록. 연락을 기대하거나 혼자 마음이 내달아가지 않도록.
원래 열흘 정도 연락했을 때 만나기로 했었다. 그런데 그 날이 하필 서울 폭설 다음날이라 그 다음 주로 약속을 미뤘었다. 물론 그 사이 눈이 좀 녹아 거동에 문제가 없을 때도 우리는 만날 약속을 잡지는 않았다. 우리 집에서 차로 멀지 않은 곳까지 왔다 가는 그 친구 이야기를 들으며 살짝 아리송했었다. 만나기로 한 날을 앞두고 서서히 연락이 뜸해졌다.
우리는 내일 만나기로 했었다. 그리고 오늘 하루종일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나의 어떤 점이 그 친구를 실망시켰을까 나도 모르게 되짚어보다, 그런 짓은 하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2주간 외롭지 않게 잘 놀았지 뭐-라고 쿨해져보려다가도 잠시나마 일상이 맞닿아 있었던 사람이 사라진 건 역시나 허하다. 혹시 했던 마음이 역시로 바뀌면 기운이 축 빠진다. 이런 때가 오면 난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먹고 조금 더 많이 잔다.
별 거 아니다. 한 두번 겪는 일도 아니었고...
별 거 아니다.
'LOV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혼을 앞두고... (0) | 2023.01.06 |
---|---|
연인 사이에서 기념일이란? (feat. 서른살 생일) (0) | 2021.04.04 |
사랑의 너무 좋은 점 (0) | 2020.12.13 |
사랑이었던 매우 평범한 하루 (0) | 2020.12.10 |
내가 끊임없이 사랑을 찾아나선 이유 (0) | 2020.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