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었던 매우 평범한 하루를 그리면, 겨울이 먼저 떠오른다.
꽤나 스트레스였던 하루를 마친 후 버스를 타고 카톡을 남긴다.
"으으 나 드디어 퇴근! 오늘도 힘든 하루여따ㅠㅠ (대충 울고있는 이모티콘)"
버스에서 내릴 무렵 답장이 온다.
"고생했다아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봐!"
그리고 난 추운 날씨를 뚫고 호다닥 집에 돌아오겠지.
집의 간접등을 하나하나 켜면서 그 사람은 퇴근 했으려나- 생각할 무렵 전화가 온다.
퇴근했다고, 지금 집으로 오겠다고. 저녁은 뭐 먹을까.
글쎄에. 족발? 치킨? 알겠어 그러면 치킨 시켜둘게!
나는 배달의 민족을 켜서 후라이드반 양념반, 치즈볼까지 알차게 시켜둘거다.
곁들일 술은 와인으로 할까, 맥주로 할까 고민하면서.
그 사람이 오기 전까지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치만 예쁜 모습도 보여주고 싶으니까 괜히 뷰러를 한번 더 집어보고 입술도 덧바른다.
너무 강하지 않게 향수까지 슬쩍 얹어본다.
이미 온기가 있는 집이지만, 추운 날씨를 뚫고 올 그 사람 생각에 보일러 온도를 높여둔다.
그 사람은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온다.
첫 숫자를 누르는 소리를 듣자마자 난 이미 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팔을 뻗는다.
그 사람은 찬 공기와 함께 나를 가득 안아준다. 그 차가운 냄새가 좋아서 나도 그를 가득 안는다.
고생했지이-하면서 엉덩이를 토닥여줄거다.
괜히 엉겨붙어 쪽쪽거리며 거실쪽으로 비틀비틀 오겠지. 헤헤 웃으며 그제서야 떨어지면서,
옷 갈아입구와 치킨 곧 올걸?
그리고 TV를 틀어 치킨 먹으면서 보기 좋은, 놀라운토요일이나 신서유기 같은 걸 찾아본다.
무한도전 재방해주면 고민없이 그걸 볼테고.
조금 성난 노크 소리가 나면 치킨이 왔다는 뜻.
너가 문앞에 놓여있는 치킨을 주워올 동안 나는 앞접시랑 같은걸 준비한다.
와인이랑 맥주 뭐 마실거야?
난 맥주-
그러면 와인잔 하나 맥주잔 하나 챙겨서 치킨 앞에 앉는다.
그 사람이랑 보면 예능도 조금 더 재미있다.
쟤는 어떻구 저떻구, 저거 내가 먹어봤는데 이랬다 저랬다.
내가 다 먹고 와인을 홀짝이고 있으면 너도 곧 배를 두드리며 테이블에서 멀어진다.
그러면 가위바위보 시간. 진 사람이 치우기.
난 가위바위보의 신이야 바보야, 내가 허세를 부리고
난 빅데이터로 접근하는데, 너가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한 뒤 아마 또 너가 지겠지?
열받아하며 치우는 너를 놀려먹다가 결국 나도 웃으며 도와준다.
슬쩍 눈치를 보다가 양치를 하러 간다.
이제는 너랑 침대에서 놀고 싶으니까.
나도 칫솔 줘- 라는 너의 목소리가 내심 반갑다.
안아줘.
너가 양치를 하고 나올 무렵 침대에 누워서 너를 부른다.
잉잉 어리광도 부려보고, 나 안보고 싶었냐고 땡깡도 피워본다.
보고싶었지-하는 네 입술에 쪽쪽 거린다.
그러다보면 우린 어느 순간 옷을 훌훌 벗고 침대에서 놀고있겠지.
진짜로 자기 위해 침대에 누운 후에야
우리는 긴장감 없이 조금 더 편안하고 다정한 사이가 된다.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는지, 뭐가 힘들었는지 서로를 꼭 껴안고 두런두런 얘기한다.
그러다가 잘자-하고
나는 살짝 아래로 내려와 너의 옆구리 쯤에 얼굴을 파묻고 몸을 웅크린 채 잘 준비를 한다.
너는 손으로 내 머리를 토닥이며 잘 준비를 한다.
잘자.
나는 널 그렇게 사랑했고, 우리는 종종 이런 하루를 보냈었는데.
이런 하루를 보낼 수 없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헤어진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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