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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GUYS I MET

GUY#1 : 너가 내 첫 틴더남이라 다행이야

내가 틴더를 깐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딱 3명만 만나봐야지!하며 갑자기 틴더를 깔았고 워낙에 셀카를 잘 안찍는지라 내 얼굴이 (잘) 나온 사진을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몇 안되는 셀카에 친구들과 함께 나온 사진까지 끌어모아(물론 그들의 얼굴엔 스티커 부착), 드디어 틴더 시작.(=정글 입장)

 

스와이프에 익숙해질 무렵, 나에게 슈퍼라이크를 보낸 그 친구를 발견했다. 처음 받아본 슈퍼라이크라 나를 진짜 '슈퍼' '라이크'하는건가? 조금 설레어하며 오른쪽으로 스와이프했다. 얼굴은 묘하게 가려져있어서 잘 모르겠고, 키는 큰 것 같고,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고(특히 홍상수 영화), 전시회를 좋아하는 것 같고.

 

꽤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 친구의 첫마디는 대충 이랬던 것 같다. "헐 스와이프 해주시다니! 진짜 얘기해보고 싶었는데!" 약간 호들호들 느낌. 여기서 남성분들에게 틴더 꿀팁을 드려보자면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첫마디를 건넬 때 이렇게 호들갑 떠는 멘트, 나쁘지 않다. 안녕하세요-는 너무 지루하고, 장난식의 멘트는 너무 가벼울 수 있다. 정글 같은 틴더에서 '응 진짠가?'하는 착각을 1그램 줄 수 있는,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느낌으로.

 

틴더에서 여자는 자신의 외모와 크게 관계없이 엄청난 라이크를 받게 되기 때문에, 시작하자마자 여러 사람들과 얘기해볼 수 있었다. 관상은 사이언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틴더에서도 여전히 그 법칙은 적용이 되더라. 관상으로 1차 스캔 후 몇 마디 해보면 비정상인 사람을 쉽게 걸러낼 수 있다. 다행히 이 친구는 내 기준으로 정상인의 범주였고 금방 카카오톡 아이디를 주고 받았다.

 

그 친구에 대해 여러가지를 더 알게 되었다. 홍상수 영화를 엄청 좋아하진 않지만 포스터가 예뻐서 프로필로 해두었다는게 좀 어이없었고 맞춤법을 맞게 쓰는 점과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는 점이 좋았다. 본격적인 남자-여자 관계의 모습을 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간질거리게 설레는 느낌이 좋았다. 하루에 한번씩 보이스톡을 하다가 '얘를 만나도 장기가 털릴 일은 없겠구나' 싶을 때 약속을 잡았다. 

 

내가 실망할 것 보다 남을 실망시키는 걸 먼저 걱정하는 성격이다. 그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차가운 손에서 땀이 삐질삐질 나 죽는 줄 알았다. 사진과 비슷한데 달랐다. 다른데 비슷했다. 그 친구 눈에 나는 어떻게 보일까 싶어 재차 물었던 것 같아. "난 어때? 사진보다 더 나아?"

 

아무래도 조금 어색해서 낮술을 하러 갔다. 보쌈에 막국수에 증류수 비슷한 걸 마셨던 것 같고 적당히 취기가 올라 근처에 사진 전시회를 보러 갔다. 그 친구가 자주 가던 곳이라 했다. 더위가 극성이었고 술까지 올라 우리는 길을 걷다 자주 편의점에 들어갔다. 얼음컵 음료수도 사먹고 술 때문에 속이 부대껴 숙취해소제도 사먹었다. 그렇게 헤롱헤롱 걸어다니며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했다. 새로운 삶과 취향을 만나는 건 즐겁다. 삶의 활력이 되는 기분이다.

 

그렇게 두어번을 더 만났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게 되어버린 날, 그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에 그만 만나야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그 친구가 나를 좋아하는게 보이는 반면 나는 그 친구에게 더이상 마음이 가지 않을 것 같단 확신이 들었다. 나는 늘 애매한 남녀사이를 못 견뎌했다. 온도가 다른 관계는 뜨거운 쪽과 차가운 쪽 모두에게 불편하다.

 

마음보다 몸이 더 빠르게 가까워지는 관계도 쉽지 않았다. 나중에 이건 틴더의 특성인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되었지만, 아무튼 난 틴더가 처음이었고 이건 뭔가- 싶을 때가 잦았다. 내가 연상이라 그 친구를 만나면 이것 저것 사줘야 할 것 같은 K유교장녀 심리가 발동하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그래도 참 좋은 친구였다. 내 첫 틴더남이 그 친구라, 나는 조금 더 오래 틴더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앱에서 진짜 짝꿍을 찾을 수 있다는 환상을 한동안 더 지닐 수 있었다. 하지만 두번째 틴더남을 만난 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버리는데...

 

 

 

 

 

👉 GUY#2 : (1) 완벽한 남자가 나를 좋아할 땐 의심해보아야 한다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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