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나의 ‘성 취향’을 한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런 것을 꺼리는 편은 아니었고, 오히려 관심만은 굉장히 많은 편이었다.
(야동을 일찍 접했고 꾸준히 감상해오고 있다.)
그러나 '행위 그 자체'를 즐기지는 않았다.
오직 애인끼리만 할 수 있는 행위이니, 열심히 즐겨보자- 정도의 마음가짐이었다.
분위기가 잡히면 적당한 애무 후에 본 게임을 하는, 그런 상식적인 일련의 과정을 겪어왔다.
20대 초반에는 허접스러운 수갑을 하나 사와서 낄낄거리며 차보기도 했었는데, 그게 나의 취향이 되진 않았다.
수갑은 딱 한 번 사용된 후, 서랍 깊숙한 곳(혹은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혹시.. 성향이 있어? 나는 조금 거친 걸 좋아하거든.”
포문을 연 그가 나에게 전달해준건 본인의 성향을 알아볼 수 있는 BDSM 테스트 링크였다.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 링크)
* BDSM이란? (출처 : 나무위키 개요)
BDSM은 BD, DS, SM 이 세가지 성적 지향을 일컫는 말이다.
- Bondage = 구속
- Dicipline = 훈육, Dominance = 지배
- Submission = 굴복, Sadism = 가학
- Masocism = 피학
(아래의 설명은 이 세계를 잘 모르는 ‘바닐라’ 저자가 쓴 글로, 더 확실한 정보를 얻고싶으신 분들은 나무위키, 블로그, 트위터 등을 찾아보세요.)
나는 성향이 강하지 않은 ‘펫’과 ‘리틀’이 나왔다.
이름만 봐도 유추할 수 있듯 말 잘듣고 순종적인 취향으로 나왔고, 그는 본인의 말처럼 지배하고 휘두르는 화끈빡끈한 취향이었다.
그는 자신이 보유중인 여러 도구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일반적인 딜도도 있었고(!), 손목 등을 묶어도 끈적임이 남지 않은 플레이용 테이프도 있었다.
이 모든 건 나에게 너무나 새로운 세상이었다.
나에게 성적으로도 취향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고(그 전까지 성적 취향은 남자만의 취향으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이를테면 스타킹, 바니걸 등), 무엇보다 너무나 자극적인 세계 아닌가.
나는 불나방 같았다. 관계 속에서 상대방에게 잘 맞춰지는 성격에 힘입어, 이 세계에 기꺼이 몰입했다.
내가 읽은 블로그 속의 펫과 리틀 성향처럼 행동했다. 그의 취향에 더 맞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블로그 공부까지 했다.
그의 구체적인 성향은 ‘디그레이더’였다. 굴욕 또는 수치심을 상대방에게 줌으로서 쾌감을 느끼는 성향이라고 한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나는 당하는 것(?)을 좋아할지언정 굴욕을 느끼며 흥분하는 타입은 결코 아니었다.
이로인해 종종 관계 중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하는 현타가 찾아왔고, 관계 도중 행위를 하는 나를 지켜보는 느낌이 드는 자아분리에 빠질 때도 있었다.
(섹스는 이성의 자아와 본능의 자아를 대통합하는 멋진 행위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것은 정말로 비극적인 일이었다.)
난 곧, 이 침대 위의 관계가 지속될 수 없음을 알았다.
나는 이걸 본능적으로 즐기기보다는, 상대가 기뻐하는데서 즐거움을 찾으며 일탈적인 재미로 여길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잠자리에서의 내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지, 스스로를 계속 점검하는 느낌이랄까.
내키지 않는 스킨십이 일어날 때 싫다는 티를 내면서도, 이로 인해 우리의 성적인 관계가 어그러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길지 않은 시간을 만났지만, 우리의 잠자리 횟수는 빠르게 줄어갔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꼭 섹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취향만 봐도 알 수 있듯, 우리는 많은 것에서 다른 취향과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를 만나며 절실히 느꼈다.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걸.
나와 다른 사람은 순간은 끌릴 수 있지만, 지속 불가능하다는 걸.
나와 비슷한, (내 생각엔) 모든 것이 뛰어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그런 사람을 찾아서 나는 다시 틴더 앱을 켜게 된다.
그리고 어라..? 그 어려운 일을 내가 해내는데…?
👉🏻GUY#7 : (1)모든 것이 적당한 그에게 없는 두 가지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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