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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GUYS I MET

GUY#5 : 작은 고추는 맵지 않다

2년 전의 나는 정말 미쳐있었구나.
지금보다 두 살이 어렸던 미친 나(년)은 집소개팅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내가 한 모든 미친 짓의 시작은 '비정상'을 '낭만'으로 착각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 남자와는 밤 12시가 다 되어갈 쯤 매칭되었다.
난 반쯤 눈을 감고 손가락만 친절한 채로 대화를 시작했다.
매칭된 그 남자는 굉장히 진지했다.
초반 대화가 스무스하게 풀려가자, 그 남자는 대화에 집중을 하고 싶다며 커피를 타온 뒤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해 본격적으로 대화를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나의 망할 '고리타분한 진심'은 이런 포인트에 약하다.
'어? 이 남자 진심인가?' 생각이 드는 순간, 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내 짝꿍일지도 모를 남자를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아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진지하고 즐거웠던 두 시간의 대화는 이틀 뒤 집소개팅 약속을 잡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어쩌다 이런 파국에 이르렀냐고?
그 사람은 스타트업 대표였고 일이 늦게 끝난다고 했고, 그 당시엔 코로나 셧다운 때문에 9시면 카페와 음식점이 문을 닫았다.
주말에 보면 되지 않느냐고?
우리가 대화를 나눈게 주 초반 평일이었는데, 그는 이 좋은 분위기를 빨리 만나서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았던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그는 우리 집에 초대되어있었다. 그것도 소개팅남으로.

나는 이 과정을 보이스피싱을 당한 피해자의 심정으로 밝힌다.
텍스트로 보면 너무나 뻔히 보이는 개수작이 그 순간의 공기, 분위기, 그런 것들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그저 '운명일 수도 있는 것'에 나의 전부를 내거는 미친 기집애였다.)

아무튼 그는 우리 집에 그렇게 입성했다.
'드디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시작되는군'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시길.
그 이후의 일은 그리 로맨틱하지도 않았고, 다행히 장르가 공포나 스릴러로 바뀌지도 않았다.

간추려보자면, 우리는 회를 시켜 소주를 몇 잔 했다.
술이 조금 오른 그는 (당연하게도) 진상을 부리기 시작했고 나는 의도치 않게 그의 사이즈와 상황(?)을 알게 되었다.
어땠냐고?
위로 올라가 제목을 다시 읽어주시길.
나는 그를 별탈없이 집에서 내보낼 수 있었다. 조상님, 감사합니다.

비일상적인 낭만은 쉬이 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와 드라마에서 다뤄지는 것이다.
이런 당연한 명제조차, 나는 당해봐야 안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안다. 그리 현명하지 못한 것이다.

아, 물론 이번 일을 계기로 알게된 건 아니다.
슬프게도 나는 아직 몇 번 더 호되게 당한 뒤 이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침내 틴더에서 '남자친구'라는 것을 사귀게 되는데...

👉🏻 GUY#6 : (1)이상형이 마동석인 건에 대하여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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