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메로스 / 다자이 오사무
인간의 나약하고, 찌질하고, 추악한 면을 언뜻 비추는
지극히 사소한 행동과 생각을 누구보다 잘 그려낸다고 생각한다.
갓 입사해 불안에 떨고 있던 나에게 무지 위로가 된 문장.
"모든 것이 이제부터다. 아직은 미숙하다. 문장 하나하나를 숙고하면서 쓰고 있다. 아직은 내 얘기만을 잔뜩 쓰고 있다. 화내고, 스러하고, 웃기도 하다가 괴로워하면서 하루하루를 소일하고 있는 형편이다. 역시 서른한 살은 서른한 살만큼의 일밖에는 할 수 없는 거다, 하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나는 이 자각이 몹시도 고마운 발견이라고 여기고 있다. <전쟁과 평화>라든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같은 대작을 아직은 도저히 쓸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이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아니, 절대로 쓸 수가 없다. 마음만은 그러고 싶지만 이를 감당할 역량이 내게는 없다. 그렇다고 굳이 서글퍼하지도 않는다. 나는 오래 살아볼 작정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두고두고 해볼 작정이다. 이런 각오도 요즘 겨우 생겨났다. 나는 문학을 좋아한다. 너무도 좋아한다. 이 점은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다. 이를 차마시며 노닥거리듯, 이른바 '다화(茶化)'해서는 결코 안 된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거다."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읽을 때마다 흠칫하게 만드는 '너님은 나입니까' 문장.
"그러고보면 난 참 못난 놈인 것만 같습니다. 아침에 눈을 뜰때마다 오늘이야말로 굳건한 의지로 잘해나가야지, 후회 없는 삶을 영위해야지, 그렇게 다짐하면서 벌떡 일어나곤 하지만 아침식사 시간까지도 지속되지 못합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며 사뭇 긴장을 늦추지 않고, 하다못해 문 닫는 일, 눈 깔고 복도 걷기, 우편배달부에게 미소 짓고 응대하기 등에까지 신경을 써봤지만, 문득 '나는 역시 어쩔 수 없다니까....'하는 자학 심리가 고개를 쳐들고야 말아요."
그리고 참 착하게도 쓰인 아름다운 문장들.
"세상은 그런 게 아니잖아요.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경우에 따라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게도 되고, 그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넘어가는 도리밖에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이고, 어느 시대의 사람인지에 대해서 이제는 떠오르지 않아도 좋다. 언젠가, 옛날, 그 때, 그 사람에게서 얻은 공감을, 자못 그것만이라도 지금 실감으로 곧이 파악하고 싶다."